여성복 구매 주기에 맞춘 견본시 개편
프랑스 파리 노르 빌팽트 견본시장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섬유 소재 전시회 '프르미에르 비종(PV)·파리'가 9월 1일 개막해 3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27/28년 가을·겨울 시즌용 원단을 중심으로 실, 가죽, 디자인, 액세서리, 제조 부문까지 900개사가 넘는 업체가 참가하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정작 소재가 아니라 일정과 구성이다. 예년 9월 중순이던 회기를 이번에는 월초로 통째로 옮겼고, 여기에 섬유 소재의 전통적 범주를 벗어난 새 구역 '코스메틱 빌리지'까지 신설했다. 단순한 스케줄 조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견본시가 어떤 기준으로 시기와 구성을 다시 짜는지를 드러내는 사례여서 업계가 비교해볼 만하다. 소재를 사고파는 자리인 동시에 다음 시즌 트렌드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창구라는 점에서, 이번 개편은 전시 운영진이 시장 신호를 어떻게 읽었는지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가장 큰 변화는 회기 이동이다. PV·파리를 이끄는 플로랑스 루송(Florence Rousson) 회장은 이번 조정이 여성복 시장의 구매 주기에 맞춘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비교 대상은 같은 GL이벤츠 계열이 아닌 경쟁 견본시 밀라노 우니카다. 밀라노 우니카는 남성복 소재 비중이 높은 반면 PV는 여성복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두 전시는 같은 소재 시장을 다루면서도 최적 개최 시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이번 조정의 근거다. 여기에 더해진 코스메틱 빌리지는 PV가 원단·실·가죽 같은 전통 섬유 카테고리에서 화장품 영역까지 취급 범위를 넓혔다는 뜻이다. 900개사 이상이 참가하는 규모 자체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파리 본체의 출전자 수는 감소 추세라는 점도 함께 짚을 대목이다. 대신 GL이벤츠는 패션 분야에서만 18개 견본시를 운영하며 해외 위성전을 늘리는 방식으로 총량을 보완하고 있다.
이 조정을 이해하려면 코로나19 이후 견본시 업계 전반의 변화를 함께 봐야 한다. 루송 회장은 코로나 전후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기술 활용에 대한 태도라고 짚었다. 디지털 전환이 급격히 진행된 동시에, 대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도 오히려 함께 커졌다는 것이다. 이 두 흐름이 동시에 강해졌다는 점이 견본시 운영 방식을 바꾸는 배경이다. 실제로 10년 전에는 전시장 내 스마트폰 촬영조차 금지됐지만 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언급은, 견본시가 정보를 통제하던 공간에서 정보를 적극적으로 순환시키는 공간으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해외 위성전 확대도 같은 맥락이다. 코로나로 이동이 어려워지자 도쿄에 트라노이 현지판을 만들어 출전자를 현지에 집중시킨 판단이 그 시작이었고, 이번에 인도 바랏텍스(Bharat Tex)와 협력 의향서를 교환한 것도 팬데믹 이후 굳어진 지역 분산 전략의 연장선이다. 파리 본체가 정체된 사이 해외 접점을 늘려 시장 전체 규모를 유지하려는 계산으로 볼 수 있다. 견본시라는 형식 자체가 물리적 장소를 빌려주는 부동산업에 가까웠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누구를 누구와 연결할지를 설계하는 매칭 서비스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점도 같은 흐름에서 읽힌다.
이번 회기 이동이 일회성 조정인지, 아니면 앞으로도 9월 초 개최가 고정될지는 다음 시즌 전시에서 확인할 대목이다. 코스메틱 빌리지가 실제로 화장품 업계 출전자를 얼마나 끌어들이는지도 지켜볼 지점이다. 신설 구역이 자리를 잡으면 PV는 섬유 소재 전문 견본시에서 뷰티까지 아우르는 복합 전시로 성격이 넓어질 수 있다. 인도 바랏텍스와의 협력 의향서는 아직 상호 연계, 수출 촉진, 공동 운영위원회 설치라는 틀만 정해진 단계이므로, 실제 공동 전시나 교류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되는 시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밀라노 우니카를 비롯한 경쟁 견본시가 PV의 일정 변경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비교 포인트다. 두 전시가 서로 다른 성별 시장을 겨냥해 시기를 나눠 가진 구도가 굳어질지, 아니면 다시 겹치는 방향으로 돌아갈지에 따라 브랜드와 바이어의 출장 일정 자체가 달라진다. 전시는 3일까지 이어지며, 이후 공식 결산 발표에서 참가사 수와 바이어 방문 규모가 예년과 비교해 어떻게 나왔는지가 이번 개편의 성패를 가늠할 첫 지표가 될 것이다.